오후 일정.
12:37. 점심식사를 마친 후 주변 정리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 삼치항님의 오후일정 브리핑이 있었다.
12:38. 이어서 깃발맨 엑티브님의 신호에 따라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12:40. 왕방산 임도 입구로 이동.
임도 초입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며 간단하게 코스를 살핀 후 걷기 시작.
오후가 되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자 제대로 된 가을산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쾌!
앞모습을 찍어볼 양으로 뜀박질을 했다가
사진 두 어장 찍으면 어느새 또 꼴찌.
또 빠른 걸음으로 몇 발자국 앞서가서 한 장 찍고.... 에고! 이 짓 못하겠당. ^^
13:01. 첫 번째 휴식. 왠일로 이리도 빨리? 알고 보니 수령 450년 노송 구경하라는 배려다.
후미가 너무 늦어서 언짢으셨나? 꼴찌가 도착하는 걸 보던 길잡이께서 농담삼아 "출발!"을 외친다.
450년된 노송 앞에서 기념촬영.
끝내 단체사진 찍기를 거부한 얼굴 예쁜 회원 몇 분을 고발합니다. 요기까지도 내려오기 싫다구요?
450년 보호수를 지나 조금 걸으니 길이 좌측으로 급하게 굽어진다.
와, 멋있다! 아쉽게도 사진은 눈으로 본 느낌에 훨씬 못미친다.
아니! 이리도 좋은 길을 천천히 걷지 않고 왜 그렇게 후다닥 지나쳐버린 걸까?
늦가을, 낙엽이 좀 더 수북이 쌓여있을 때 요 길을 다시 걸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불구불 임도가 가을옷으로 갈아 입고 하얗게 꼬리를 펼쳐놓았다.
지난 여름, 남해안 장기도보가 불현듯 생각난다. 길모퉁이를 돌면 또 어떤 바다풍경이 나타날까 기대가 되었듯이 끝 없이 이어진 임도의 코너를 돌 때 마다 다음 장면이 기다려진다.
내가 늦기는 많이도 늦은 모양이다. 멀리 건너편에 보이는 임도 꼭대기로 이미 선두대열이 넘어간다.
억새가 절벽에? 들판에 핀 억새에만 익숙해져있었는데 그런대로 볼만하다.
이런 기분 좋은 길을 천천히 걸으면 좋으련만 이미 꼬리가 잘렸다. 여전히 제일 꼴찌인갑다.
에휴!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던가? 중간 보다 꼴찌가 낫다. 앞에 사람이 없으니 사진도 찍고 호젓하게 걷기에 그만이다.
은빛 억새가 임도를 따라 줄곧 피어 있고 눈을 들어 멀리 보면 온 산이 울긋불긋 하다. 가을이다.
산이 작아 위 아래 구별 없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쭈우타!
산허리를 가르는 임도를 따라 걸으니 단풍나무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보이는 단풍나무를 한 컷.
14:45. 이제 선두대열은 우릴 버린지 오래되었다. 후미담당 만딩고님이 저기 보이는 걸 보니 내가 또 제일 늦은 모양이다.
아그네스님이 가져오신, 어린애 머리통 만한 배 두 개를 아리리스님이 잘라서 배급... 씨원타!
14:55. 배와 막걸리로 힘을 비축한 후 다시 길 모퉁이를 돌아 간다.
오른쪽 양지바른 바위에 무당벌레가 떼거리로 몰려 있다. 몇 마리일까요? (숨은 그림-무당벌레-찾기)
이 길을 걷는 이가 무슨 소망을 담아두었을까? 키 작은 돌탑이 쪼로록 놓여 있는 길을 지나간다.
15:11. 딴짓 안하고 부지런히 걸어서 중간팀이 쉬는 곳(예래원)에 도착했다. 30분이나 기다렸단다.
엉덩이를 붙이려는데 일행은 또 자리에 일어선다? 우이쒸~. 늑장부린 우리가 잘못이니 어쩌누.
"딱 1분만 더요"를 간절하게 외치는 풀꽃, 헬렌님.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라 가을색 화려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라도 심호흡을 하고 싶었을 게 틀림 없다.
일행을 놔두고 먼저 갈 리 없는 후미담당 만딩고님. 눈빛으로 무언의 압력을... 빨리 안 일어날래(요)?
저만치 내려가던 간새다리님이 가파른 언덕길을 되돌아 올라온다. 온종일 들고 다니던 손바닥 만큼이나 큰 노오란 생강나무 나뭇잎을 앉았던 자리에 두고 갔단다. 버리고 가도 그만인 나뭇잎 하나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마음씀씀이가 예쁘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구르던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던가?
간새다리님.
떨어뜨리고 갔던 나뭇잎을 내가 주워준 것 때문이었을까? 단지 잠간 동안 나란히 걸었을 뿐인데 기독교에 온전하게 귀의한 자신의 '엄청난' 비밀을 들려준다. 어머니의 기도에도 꿈쩍 않던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건 다름 아닌 자신이 가르쳤던 결손가정의 아이 하나가 어느날 놀라운 신앙인으로 탈바꿈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부터였다던가? (그 아이를 통해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 이루어졌음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공원묘지를 가로질러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오늘 여정의 골인지점에 거의 다 왔나 했는데....
에고! 아니다? 가파른 아스팔트길 중간까지 올라가더니 다시 임도로 들어선다. 4km쯤 남았단다.
감사 또 감사. 가을산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더랬습니다.
감국 흐드러지게 핀 길을 걷는 청춘남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임도걷기의 마무리는 가파른 시멘트포장길. 22km 여정의 끝무렵이어서 그런지 걷기 싫다.
간사한 게 인간. 누군가 소리친다. "그래도 S라인 임돈데?"
내려온 길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으려는데 최연장자이신 슬매님이 슬며시 걷던 길 옆으로 비켜서신다.
카메라를 의식하고 일부러 피하신 건줄 알았는데 잠시 후에 보니 들꽃을 한아름 꺾어들고 내려오신다.
슬매-슬기로운 할매-님, 보기 좋습니다. 꽃을 보며 수줍음 타시는 표정에서 젊은시절, 꽃 보다 아름다웠을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저도 몇 년이 지난 후에 슬매님 처럼 고운 마음씨를 지닐 수 있을런지...
16:20. 종착지인 쇠목마을에 도착. 걷기 종료. 선두는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구요? 설마....
서부의 총잡이가 총을 꺼내려는 듯한 폼으로 길 한가운데에 서있는 조약돌님 발견.
12지신상까지는 봐줄만 한데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나무조각작품들이 즐비하다.
오호라! 조약돌님이 마주 서서 보고 있던 작품이 이거로군요.
고양이 머리에 여자의 몸체를 지닌 조각품 앞에서 정수기님이 포즈를 취한다.
(포우의 검정고양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나? 이거야 원 완존엽기구만....)
좀 더 요염한 포즈 안될까? 기껏 요청에 응한다는 게 막 잠에서 깨어 기지개 켜는 포즈가 되었구만요.
막둥이 참가자 현재군(초딩3)이 아빠(당선생)와 함께 당당하게 골인지점으로 들어온다. 현재 최고!
서울 들어오는 길은 무지하게 막혔다. 무려 두 시간 여 만에 구의동 도착.
뒷풀이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일행과 헤어져서 지친몸을 이끌고 지하철 역으로....
정기도보 끝.
*깃발 액티브님, 길잡이 삼치항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청계산지기님과 아이리스님을 비롯한 운영진의 수고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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