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09국토횡단 사진일지(3)

성더기 2009. 1. 29. 17:52

 2009년 1월 5일(월)

 

일정: 대광리역 -> 철원군 양지리(28km)

 

 

아침조회: 숙소인 샬레장여관 앞 도로에서 대장(별명:중직)님의 간단한 훈시를 듣고 

             준비운동 후 출발.(08:55) 

숙소의 취사 여건이 좋지 않아 않아 식사가 늦어지면서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신탄진역 도착.(10:00) 

가장 연장자이신 두리안-빗방울 부부께서 사탕을 나눠주셨다. 감사합니다.

 

 

휴식 후 출발.(10:08)

신탄진 역 앞에서 철길을 건너 고대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칸님의 표정이 어째 좀...... (발바닥 물집이 심한 걸 나중에야 알았다.)

 

 

고대산 입구 매표소 직원과 입장료를 내니 안내니 하면서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다가 

총무(다솜)님의 결단으로 단돈 1만원에 통과. (입장료 500원 * 25명 = 10000원, 맞죠?)

 

 

고대산 임도로 들어서자 처음으로 눈을 밟을 기회가 생겼다.(10:29) 

 

 

고갯마루에서 두 번째 휴식.(10:43)

그것도 산이라고 눈 덮힌 비탈길을 십 여분 오르다 보니 땀이 솟는다.

 

먼저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리는 선두 그룹.

 

 

휴식을 취할 때마다 총무인 다솜님은 복분자즙(때론 커피)을 일행들에게 권했다. 탱큐.

소똥에도 층계가 있고 흙탕물에도 파도가 이는 법. 용파리 길잡이님 먼저 드리고....

 

 

다시 출발.(10:50)

 

 

호! 길 양 옆으로 걷는 광경이 마치 군인들의 분대행군을 보는 것 같습니다요.

 

 

고대산 임도를 벗어나 율이리에서 세 번째 휴식.(11:38)

 

 

부상자 발생. (지칸, 겨울여행님)

무릎이 아파 걸음이 더딘 겨울여행님에게 조심스럽게 상태를 물어 보는 용파리님.

 

때마침 지나가는 청소용역차량에게 부탁하였으나 좌석 여유가 딱 한 자리 뿐.

지칸님이 먼저 차를 얻어 타고 지원차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겨울여행님은 점심식사하는 곳까지 걸어서 이동.(노동당사까지 고개 하나를 넘어 1.5km를 걸어야 했다.)

 

지름길로 오느라 시간 다소 절약. 멀리 노동당사가 보인다.(12:17)

 

 

노동당사 주차장 옆 매점 뒷쪽,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화장실 정화조 위에서 바람을 피하며 점심식사. 추운 겨울날 한데서 먹는 오뎅국이 일품이었다.(12:35)

 

 

한국전 당시 한 때나마 인민군 노동당사로 쓰였던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13:18) 

 

 

일부는 도피안사에 들렀다가 가느라 4km가량을 더 걸었다.

 

 

식사당번이 지원차량을 이용해 방금 삶은 따끈따끈한 계란을 두 개씩 배급해준다.

잠시 길 옆에 앉아 까먹기. 손이 더러운 거 따질 때가 아니다. "후다닥" 그리고 "낼름~."

도피안사에 들르지 않고 곧장 간 일행과는 제법 거리 차이가 많이 생겼다. 

후미에서도 한 참 뒤에 처진 마음이 급하다. 

발가락이 불편해서 걸음이 느리던 달래님이 속력을 낸다.  

 

이놈의 직선도로가 끝나는 저기 어딘가에 오늘의 목적지가 있다는데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15:24)

 

 

양지리 통제소 도착. 원래 목적지였던 이길리에서 양지리로 바뀌었단다.

오늘은 여기 어디서 잔다며? 야호! 다 왔다.(15:52) 아주 '환영'한다고 써붙였군 그래.

 

이 때만 해도 오늘 일정이 일찍 끝난 것을 좋아하며 곧 숙소(민박집)에 들어가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지 이 길바닥에서 두 시간 반이나 떨며 서있을 줄은 몰랐다.

사연인즉, 민통선을 통과하려면 사전 신고가 있어야하는데 민박집에서 잠만 자고 다시 나올 거라서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연대와 사단으로 수 차례 전화가 오고 갔으며 민박집 주인이 와서 사정을 해도 규정은 규정. 꼼짝없이 길바닥에서 밤을 나야할 상황이었다. 이거야 원....

아니? 먼저 들어간 십 여명은 어쩌고? 이미 민박집에 들어간 사람들 말이다.

소규모 가족들의 방문시에는 민박집 주인이 검문소에 나와서 데리고 들어가곤 했다는데  2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떼지어 몰려왔으니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게다.

 

 

본의 아니게 사흘째의 일몰을 또 길 위에서 보게 되었다.(17:12) 도착 1시간 20분 경과.

 

 

두 시간이 넘도록 절망적인 상황만 전개되는 듯 하였으나

사단에서 왔다는 전화를 받아보라며 초병이 전화기를 건내주길래 "10살짜리 꼬마부터 67세 나이드신 분까지 스물 다섯 명이 하루 종일 걸어서 이곳에 도착했는데 통과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길 바닥에서 자거나 잘 곳을 찾아 어디론가 밤길을 또 걸어가야한다"는 호소가 통했을까?  저녁 6시 하고도 10분 경쯤에 통과허가가 떨어졌다. "야호!!!."  

신께 감사드리고, 규정에 우선해서 인간적인 결정을 내려준 군 담당자에게 감사드린다.

 

어렵사리 민박집 주인의 1톤 트럭을 타고 숙소에 들어오니 식사 준비가 거의 다 되어있었다. 일행 중 반은 이른 시간부터 행복했고 나머지 반은 뒤늦게 나마 행복을 찾았다.

사흘 쨋날에 맞았던 첫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 역경을 이겨낸(?) 대원들을 위해 박수, 

어려운 상황에서도 식사를 정성껏 준비한 식사당번들에게 감사드리며 또 박수.

"밥 먹읍시다요"(18:53)  

 

따뜻한 방바닥에서 김치찌개를 겻들인 저녁상은 만찬이었다.

홧김인지 안도감 때문인지 못 먹던 술이 술술 넘어간다.

 

밥 먹던 곳이 그대로 잠자리가 되었다. (위 사진과 같은 위치에서 찍음.)

 

 

식사당번들의 전략회의.

돌이켜 보건대 장기도보 최고의 식사당번이었다.- 더기생각. (어! 댁도 같은 생각?)

 

 

세 번쨋날이 저물어 간다.

밤하늘엔 별도 참 많이 떴다.